맛 잇는 음식....

살 오른 대게 … 바람개비 도는 언덕 … 싱그러운 3월의 포구

dunia 2009. 3. 19. 11:29
3월, 만물이 '물'오른다. 봄 언덕에는 새싹이 오르고, 아지랑이가 오른다. 동해바다 대게의 껍데기 속으론 고소한 살이 탱탱히 오르고, 때를 맞춰 경북 영덕에선 20일 대게축제의 막이 오른다. 그리고 영덕 강구항~풍력발전단지를 잇는 20번 해안도로 길섶으론 조용히 봄이 피어오른다.

오십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자리잡은 영덕 강구항은 전형적인 포구다. 그러나 3월이면 여느 포구와 다를 바 없는, 아니 여느 포구보다 더 평범한 포구인 이곳으로 전국의 미식가들이 모여든다. 바로 이곳에서 건져 올리는 영덕대게 때문. 강구항 일대 대게요리집만도 백여 곳이 넘는다고 하니 대충 그 유명세를 알 만하다.

식당마다 입구에 찜통을 두고 대게를 찌느라 하루종일 뜨거운 김을 뿜어댄다. '대게'란 두 글자가 안붙은 간판이 없고, 안붙은 메뉴가 없다. 심지어 어느 가게 미닫이문에선 '대게 라면'이라는 메뉴마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대게는 1년 중 3월에 가장 물이 오른다. 강구항은 하루 중 오전 8시30분 대게 경매가 시작될 무렵 가장 물이 오른다. 밤새 바다에서 잡아올린 대게는 오전 11시가 되어야 다 팔린다. 알이 꽉 차 오른 놈들은 오른쪽 집게발에 붉은 '완장'을 찬다. 아무래도 이런 놈들부터 먼저 팔려나간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들은 소위 '물게'라 불리며 속이 실하지 못한 놈들이다. 일찍 서둘러 나온 가게 주인들은 좋은 게를 만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물게'를 만난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부산에서도 불과 2시간 정도면 강구항에 닿을 수 있으니, 조금만 서둘러 출발한다면 한창 때 경매 현장의 긴장감을 함께 호흡할 수 있다. 뭐, 늦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곳에선 널린 게 대게다.

널린 게 대게라지만 가격이 만만찮다. 한 마리에 10만원을 웃도는 놈들도 부지기수. 이건 어디 무서워서 먹겠나? 그러나 다섯 마리를 합쳐도 비싼 놈 한 마리만 못한 것들도 있다. 게라고 다 같은 게가 아니다.

판매처에 따라서도 가격은 달라진다. 아무래도 식당보단 난전 쪽이 싸다. 강구파출소 앞에는 조그만 난전이 형성되어 있다. 난전에서 산 놈이라도 식당에 가지고 가면 일정 품값을 받고 쪄준다. 자리도 내어준다. 그러나 싸다고 아무렇게나 샀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 껍질을 까보면 먹을 게 없다. 게를 볼 줄 모르는 외지인들이라면 한 번쯤 겪는 일이다.

게를 살 땐 우선 '비싸도 좋으니 좋은 놈으로 보여달라'고 할 것. 그래서 좋은 놈을 보여주면 그 때 다시 '한 마리 더 얹어달라'고 할 것. 어느 화통한 강구 아지매가 살짝 들려준 이곳에서의 흥정비결이다. 괜히 처음부터 '싸게, 많이'를 외쳤다간 아무래도 허한 놈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20일부터 사흘간 이곳 강구항과 삼사해상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영덕대게축제에선 영덕대게잡이 낚시체험, 영덕대게 요리대회, 대게잡이배 승선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된다니 참고하시길. 그러나 '먹는 게 최고'라는 분들은 축제기간을 피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오후. 점심 식탁 위로 게 껍데기가 산처럼 쌓이면 배 속 포만감도 산이 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이제 다시 볼거리를 찾아 나설 차례. 차에 오른다.

강구항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진 2차선 도로로 동해와 나란히 달린다. 차창 오른편으로 높은 파도가 마치 승용차를 집어 삼킬 듯 하다. 으례 여행이라면 청명한 날씨가 제격이라지만 이럴 땐 궂은 날씨도 나름 운치가 있다.

'강구항'과 '축산항'을 줄여 '강축'해안도로라 불리는 이 길의 정식 도로명은 '20번 지방도'. 이곳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도로'라 자부한다. 실제로 따라 달려보니 자부할 만하다.

수려한 경관보다는 우리네 어촌마을의 속살이 정겹게 드러난다. 굽이치는 도로 너머로 나타나는 어촌마을의 풍광이 여유롭다. 날씨가 좋아지면 오징어를 비롯해 온갖 수산물들이 도로 곳곳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정취를 더욱 돋울테다. 최근 수년새 7번 국도가 증축을 하면서 옛 정겨움을 잃어가고 있는 마당에 이 도로의 고마움은 더욱 크다.

강구항을 출발해 해안도로를 따라 10여분을 달리면 대게의 앞발 모양을 형상화한 청포말등대를 만날 수 있다. 동해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청포말등대의 뒤쪽 언덕 위로 거대한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돌아가는데, 이곳이 바로 영덕 풍력발전단지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듯 바람도 제 길을 따라 들고 나는 법. 지난 2005년 이곳 '바람의 길목'에 바람개비 20여개를 세워 '바람의 언덕'이라 이름지었다.

말이 '바람개비'이지 사실 '바람개비'라고 하기엔 너무 크다. 80m 높이의 타워 꼭대기에 직경 82m의 거대한 날개가 회전하는 이 피조물의 정식 명칭은 '풍력발전기'. 가까이서 올려다보면 거대하다 못해 위엄까지 넘친다. 그러나 조금만 뒤로 물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발전기는 어느새 작은 동산에 꽂혀있는 앙증맞은 바람개비로 변한다. 게다가 하늘과 바다의 푸른색을 배경으로 삼으면 그 풍광이 가히 목가적이다.

사실 찾아간 날은 아쉽게도 궂은 날씨 덕분(?)에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없었지만…, 꼭 찍어 먹어봐야 장맛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못 믿으시겠다면 인터넷을 검색해봐라. 전국의 수많은 '찍사'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실제로 앙증맞은 바람개비를 보고 싶은 방문객들을 위해 언덕 정상 휴게소 인근에 바람개비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선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바람개비들이 모여 바람을 맞는다. 날개마다 달려있는 조명이 밤이면 빛의 원을 그리며 이색적인 야경을 보여준다. 바람개비동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작은 운동장 너머에는 항공기 6대가 전시되어 있다. 조종석까지 상세히 살펴볼 수 있으니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흥밋거리가 되겠다.

돌아가는 길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인근 어촌민속전시관(054-730-6790~5)에 들러보자. 강구항 초입 강구대교를 건너기 전에 위치한 이곳에선 옛 어민들이 사용했던 어구와 어선 모형 등 당시 어촌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3D 입체영상관과 대게잡이 체험 등 다양한 해양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자녀들과 함께 한 나들이라면 여정의 마지막 교육용 코스로 제격. 관람료는 어른 2천원, 학생 1천원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글=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사진=정대현 기자 jhyun@

경북 영덕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부산을 벗어나 경주IC에서 7번 국도로 옮겨타고 무조건 북진(?)한다. 포항을 지나 30분 정도를 더 달리면 동해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거의 다 왔다. 주변으로 드문드문 '대게'란 글자가 섞인 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표지판에 신경을 쓰자. 조만간 '강구항, 해맞이공원 방향 우회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우회전 화살표에 '20번 지방도' 표시도 함께 있다.

표지판을 지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다리 강구교를 건너면 강구항이다. 다리 위로 영덕대게를 알리는 전광판이 달려 있어 알아보기 쉽다. 자칫 표지판을 놓치면 영덕 시내로 들어가 버린다.

강구항은 영덕대게 외에도 1990년대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졌다. 찾아오는 길, 드라마 주제가였던 루 크리스티(Lou Christie)의 노래 'Beyond The Blue Horizon'를 들으며 운전하는 것도 강구항의 매력을 더욱 만끽할 수 있는 하나의 작은 팁일 듯. 김종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