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최악의 여건에서 돈을 풀다.
세상에 오직 돈만 풀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경기침체라는 단어는 일찍이 사라졌을 것이다. 돈을 아무리 찍어도 화폐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경제이론을 완전히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통화증가와 인플레이션은 보통 세상상황에 따라 조금 다른 관계를 보인다. 즉 생산성과 잠재성장률이 낮고 재정건전성이 취약한 경우 통화팽창의 부정적 효과는 크게, 긍정적 효과는 작게 나타날 수 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최악의 환경에서 돈다발을 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 통화팽창,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다.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는 통화관리 측면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하다. 보통 통화팽창과 인플레는 경제여건에 따라 시차를 달리해 나타난다. 대개는 돈을 푼 뒤 일정시점이 지나면 통화증발 효과든, 자연 사이클이든, 경기가 돌아서고 뒤따라 물가도 뜀박질을 하기마련이다.
하지만 직전 호황 때 벌어진 일들로 인해 자금을 중개하는 은행부실이 커져 지급여력이 축소되고 은행장부에 부실이 정리되지 않은 경우, 찍어 낸 돈은 빛을 보지 못한 채 계속 잠기고 만다. 역사적으로 통화정책이 무력화되는(유동성함정) 사례는 모두 금융부실을 처음부터 과소 산정하거나 부실처리를 실기(失期)하는 바람에 신용개선이 없이 양적으로 통화잔고만 늘어난 경우다. 일본의 90년대 상황이 그 대표적 사례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들은 화폐유통 속도의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올해 경기회복이 지연될 경우 실물과 금융시장의 엔진을 돌리기 위해 더 많은 양의 통화가 필요함을 뜻한다. 또한 이는 전세계가 언젠가는 지불해야 할 화폐가치의 하락과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견적금액을 키우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당분간은 통화증가의 효과도, 부작용도 모두 약할 듯
현재 전세계는 미국 금융시스템에 대해 별로 신뢰하지 않고 있다. 미 금융회사들의 손실액이 2조 달러든 4조 달러든, 은행 국유화를 하든 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시장은 좀더 투명하고 파격적이고 신속한 조치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은행시스템이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든 아니든 미국은행들이 가계와 기업에 새롭게 신용을 공여할 수 있는 여력은 실제로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미국은행 시스템에 대한 수술이 진행되는 중에는 통화증가의 긍정적 효과나 부작용 모두 미미하게 나타날 것이다.
특히 통화증대가 글로벌 수요를 자극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간 신용으로 굴러 온 미국소비는 예상보다 훨씬 깊은 부채조정 (빚 청산, de-leveraging)으로 인해 정상보다 훨씬 낮은 과소수준에 머물고 이에 따라 세계전체가 과소수요에 빠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1/19, 2/2일자 보고서 및 그 이전의 리포트에서 계속 언급한 내용임)
자, 이제 향후 글로벌 경기 시나리오와 함께 특히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의 중계지표 격인 미 달러화의 방향을 전망해 보기로 하자.
1단계 : 지금부터 올 3분기 : 금융위기 속 달러강세 유지국면
미국경제가 침체 일로를 달리는 한 여타국가의 경기회복은 여전히 힘들 것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신흥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이상으로 금융시스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의 돈 값이 강세를 보이긴 어려울 것이다. 달러화가 미국 본토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미국 외 주변지역은 경기침체로 외환보유고가 줄고 달러결제에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지구촌 곳곳이 수난을 겪는 국면이다.
당장 글로벌 환율시장을 설명하는 주요인은 실질이자율의 격차나 실물경제의 차이 가 아니라 단지 기축통화인 달러화에 대한 수요공급이다. 글로벌 신용시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기축 통화국인 미국의 신용도는 그대로 둔 채 여타국의 신용도가 떨어지는 상황이어서 달러가치는 별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달러선호 현상(달러강세)은 미국은행 부실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 적어도 그 처리방안이 다시 정립되는 시점까지 지속될 것 같다.
2단계 : 올 4분기부터 내년 초 : 달러 소폭 약세반전 시동
미국의 소비위축으로 인한 세계경기 추락은 지금부터 오는 9~10월 무렵까지가 가장 극심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도산과 미 자동차 회사의 구조조정이 경기침체의 가장 큰 가속요인이다.
하지만 늦어도 4분기 정도부터는 비록 반등 폭이 제한적이라도 경기지표가 일단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그간의 필사적 공급(생산) 축소노력(기업의 다운사이징 작업)과 재정지출(경기부양) 효과 때문이다.
연말에 근접하면서 경기회복 무드가 조성되면 신용경색이 일부 풀리고 금융시장에 대한 긴장감이 완화될 수 있다. 이는 달러 가수요가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금융사고를 크게 친 선진국의 내수반전은 모처럼 신흥국 무역수지에 플러스로 작용하고 비달러 지역, 특히 값이 싸진 신흥국 부동산이나 기업을 평가절하된 통화로 인수하려는 글로벌 유동성이 활개를 치면서 달러와 엔화는 약세로 기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행들의 부실채권 정리작업은 여전히 신용경색의 불씨이므로 달러가치 하락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다. 이러한 소폭의 달러약세 국면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서서히 골치거리로 떠오를 것이며 장기금리는 오르고 사람들은 이를 중장기 경기회복 신호로 잘 못 이해할 것이다.
3단계 : 내년 본격적인 달러가치 하락예상
그 다음은 2010년 2/4분기 이후의 보다 긴 예측인데 이때부터 미국 발 2차 경기침체가 우려된다. 작년부터 올 가을까지가 미국 부실채권 수습에 따른 1차 경기하락 국면이라면 내년 2분기부터는 재차 증가한 부실채권 처리비용과 통화팽창의 부작용 때문에 겪는 글로벌 2차 경기 하락국면이다. 이 2차 경기하락은 결국 미국의 금융위기를 불러 온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물론 미국의 거대 소비시장을 신흥국이 당장 대체할 수는 없기에 세계경제의 위축을 피하기는 어렵지만 앞선 1단계 국면과 다른 점은 환율변화와 인플레이션의 차이다. 즉 미국은 달러약세에 스태그플레이션 모습을 보이지만 중국은 위안화의 강세 기조 속에 물가안정의 모습을 띨 것이다. 이는 중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다. 이 국면을 지나면 잠재성장률 등 경제구조가 상대적으로 젊고 탄탄한 중국의 내수가 보다 더 확장할 것이다.

비록 완만하고 더디기는 해도 미국의 대규모 경상적자가 줄고 주요 대미 교역국의 경상흑자 규모가 줄어듦에 따라 미국으로 유입되는 자본(미국의 자본수지흑자)의 규모도 함께 둔화될 것이다.
이러한 미국경제의 구조변화는 본격적인 달러가치 하락을 암시한다.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가치하락은 (그림 5의 로마화폐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한두 해에 끝날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출처] 달러화 장기하락 준비완료 /글쎄요..(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