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잇는 음식....

허접하고 좁아도 고향집처럼 발길이

dunia 2009. 4. 9. 16:35

'수구리'부터 선지국까지-청도식당

'소의 내장은 말할 것도 없고 쇠머리에서 쇠꼬리, 족발, 선지, 뼛속에서 등골까지 빼먹는다. 뼈마디의 접골부위인 도가니까지 도려내 먹고 심지어는 쇠뼈다귀 속에 스며있는 뼛국물까지 우려내어 국을 끓여 먹는다. 미각이 발달한 프랑스 사람도 쇠고기를 25가지 부위로 분류, 전체의 60%밖에 먹지 못한다는데 한국 사람은 38가지 부위, 85%를 먹는다'(이규태 저 '한국인의 힘'). 한국인의 역동성은 이렇게 먹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감춰진 맛을 찾아보았다. 뼈 속에 숨어 있는, 외진 골목길 안에 숨어 있는….

 

'청도식당' 김금선씨가 소의 가죽 아랫부분인 수구리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부산 남구 대연동 '청도식당'은 소처럼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분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맘에 쏙 들어 몇번이나 가보았지만 막상 소개하려니 망설여진다. 방이 있다고는 하지만 테이블이 고작 4개뿐인 조그만 식당이어서 그렇다. 촌사람같은 김영조(69), 김금선(68)씨 부부가 30년 넘게 장사를 했지만 내 집 한칸 마련하지 못했다며 부끄러워한다. 다 이유가 있다.

'수구리'란 낯선 메뉴를 처음 보고 "도대체 수구리가 뭐야?"하며 시켰다. 달달 볶아져 빨갛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수구리가 나왔다. 입 안에서 수구리를 몇 번 씹었는가 했는데 쑥하고 미끄러져 넘어간다. "어머나!" 이 보드라운 물건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이 보드라운 것이 속을 한바퀴 휙하고 기름칠을 하고나자 술이 그냥 술술 들어간다. 술이 몇잔 들어가니 소주와 수구리는 처음부터 한 쌍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든다.

수구리의 표준어는 '수구레'이다. 소의 가죽 아랫 부분을 벗겨낸 꼬들꼬들한 살이다. 고기도 아닌 것이 비계도 아니다. 설명하기가 참 모호하다. '백문이 불여일식'이다. 수구리는 수입도 되지 않고, 소 한 마리에서 2㎏ 정도밖에 안 나온다. 고기 값이 비싸던 시절, 서민들은 가격이 싼 수구리로 단백질을 보충했단다. 참 기특한 녀석이다. 씹는 느낌은 스지(소 힘줄)와 비슷하다. 한 접시 5천원짜리 수구리, 별미에다가 소화까지 잘 된다.

수구리를 먹고 나면 국물이 생각난다. 3천원 하는 선지국이 끝내준다. 부산문화회관 옆에 오래 있다보니 예술의 경지로까지 승화된 모양이다. 지금까지 먹어 본 선지국 중에 단연 최고이다. 어떻게 하면 선지가 이렇게 입에 착착 감기는지 신기한 노릇이다. 반찬도 무채와 김치, 파무침이 다 맛이 있는데 식사 때는 생선까지 구워준다. 이 집에 처음에는 추어탕(4천원)을 먹으러왔다. 역시 맛이 있다. 계산을 하려다 그만 미안해졌다. 소주 1병에 2천원 받는 데는 별로 없다. 어르신들이 조용하게 와서 한 잔 하는 곳을 시끄럽게 만들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 문화회관 앞 골프연습장 이면도로. 051-624-7728.

친인척 특혜도 없다-내 껍데기 돌려도

부산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내 껍데기 돌려도'를 취재하러 갔다 맛집 담당 기자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문을 여는 오후 6시에 맞추어 갔지만 한 발 늦어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제 시간에 들어오려면 5시30분부터 줄을 서야 한단다. 6시부터 1시간30분을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내 껍데기 돌려도'의 김우진씨가 돼지껍데기와 삼겹살을 직접 굽고 있다.

김우진(58) 사장 왈 "자식이나 사위가 와도 마찬가지이다. 난 바깥에서 줄서는 일에는 관여 안한다." 친인척에 대한 특혜도 없고, 기자라고 봐주지도 않는다. 처량하게 줄 서서 기다리다 보니 점점 배가 고파진다. 마음에 들지않는 김 사장, 헬스로 단련된 팔뚝이 웬만한 사람 다리통 굵기이다. 운동깨나 했다며 팔씨름을 청하는 손님들을 손가락 하나로 꺾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돼지 껍데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두고보자."

자리가 났다. 4사람이 갔는데 삼겹살 3인분과 돼지껍데기 1인분이 기본이란다. 두 사람이 오면 삼겹살 2인분, 돼지껍데기 1인분이라는 식이다. 왜 그렇게 먹어야 하냐고? 각각의 익는 속도가 달라서 그렇다. 처음 온 손님들이 술을 더 달라고 시킨다. 김 사장 말 없이 손으로 벽을 가리킨다. '술은 셀프'. 술이 셀프인 곳은 처음 보았다.

오후 9시면 간판 불을 끄고 손님을 더 이상 받지않고 10시면 마친다.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김 사장은 "이렇게 장사하는 게 재미가 있다. 또 삶에 질곡이 많아 예쁜 마누라를 잘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무서워 보이던 사장님, 은근히 재미가 있다. 술은 셀프인데 고기는 사장님이 직접 구워준다. 다 안 익은 돼지껍데기 뒤집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잘 안 익은 걸 먹으면 설사하기가 쉽다. 잘 익은 껍데기와 삼겹살을 한 점씩 해서 초장에 찍었다. 그 쫄깃하면서 새콤달콤한 맛이란. 맛의 비결은 좋은 고기를 쓰는 데 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이렇게 색깔이 예쁜 삼겹살은 처음 보았다고 감탄한다. 삼겹살에서 바비큐 맛이 난다. 고기를 다 먹고 나서 나오는 된장라면은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얼큰한 속풀이 라면이다. 된장라면을 생각하자 지금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돼지껍데기 1인분 4천원, 생삼겹살 5천원. 주례교차로 육교옆. 051-316-2723.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