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와 제테크

'월가 최후의 승자' JP모간 다이먼 회장 단독 인터뷰....퍼온글

dunia 2011. 5. 7. 13:17

'월가 최후의 승자' JP모간 다이먼 회장 단독 인터뷰

지난해 3월 JP모간체이스(이하 JP모간)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55) 회장은 미 시러큐스대 졸업식에 초청받았다. 1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동부 사학(私學)이 졸업식 연설자로 금융인을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2006년부터 JP모간의 최고경영자(CEO)에 임명된 다이먼 회장은 최근 경제위기를 거치며 '월가의 수퍼스타'로 급부상했다. 2008년 3월 부도위기에 몰린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인수했고, 불과 6개월 뒤 파산한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을 사들였다. 전자는 그에게 '월가의 구원자'라는 별명을, 후자는 그에게 '금융위기 최후의 승자'라는 타이틀을 안겼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진원지 월가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차가웠다. 일부 시러큐스 학생들은 졸업식 며칠 전부터 다이먼 회장의 연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럼에도 그는 졸업식 연단에 섰다.

JP모간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서울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Weekly BIZ와 만나 그의 경영 철학과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돼 영광입니다. 제가 졸업 연설을 하는데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여기 오기 전에 시위를 이끄는 학생 가운데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학생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요. 그리고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일부는 타당한 지적이었고 일부는 저와 의견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speak up·스피크 업)은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그런 태도가 좋습니다." 박수가 쏟아졌다.

다이먼 회장은 한해 전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경영대학원 연설에서도 '스피크 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흔히 '리더는 주변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truth teller) 한 사람은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 7명이 있고, 그중에 한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나머지 6명을 해고할 겁니다. 모두가 나서서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스피크 업'은 다이먼 리더십의 요체이기도 하다. 월가의 은행들이 고수익에 취해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상품)와 파생상품 판매에 열을 올릴 때 다이먼은 일찌감치 제동을 걸었다. 2006년 말에 JP모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매각하고 거래를 중지했다. 다이먼과 경영진이 이 상품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교환한 뒤였다. 다이먼 회장은 "우리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붕괴위험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정보공유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JP모간 임직원들이 그렇게 스피크 업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이먼 회장이 평소 늘 "회사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라"고 주문한 덕분이다.

리먼브러더스를 비롯한 월가의 경쟁자들이 간판을 내리는 동안, JP모간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2조1000억달러(약 2250조원)로 미국에서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이어 2위로 성장했다. KB금융그룹의 8배가 넘는 규모다.

Weekly BIZ는 최근 방한한 다이먼 회장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영어와 한국어로 된 명함을 내밀며 악수를 건넸다. 1m83㎝의 큰 키인 그는 행동만큼 말도 빠른 패스트 토커(fast talker)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박3일의 빡빡한 방한 일정 탓에 지쳤는지 말은 다소 느렸다.

다이먼 회장은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가 그리스에서 건너온 그리스계 3세다. 또 지난해 보너스를 포함해 총 2300만달러(약 250억원)를 받아 미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은행가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다이먼 리더십의 핵심은 ‘speak up’

리더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만 곁에 둬야…
2006년 JP모간 CEO에 올랐을 때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문제 있다”… 참모진 의견 듣고 관련상품 털어버려
금융위기 화염에 휩싸였을 때 우린 보호벽 쌓는 대신 풍차를 돌릴 수 있었다”



“금융의 핵심은 ‘리스크 관리’… 대출 받으러 오면 돌려보낼 줄 알라”


다이먼 회장은 이번에 한국에 도착해 유명세를 호되게 치렀다. 경호팀을 대동하고 다니는 그의 출장일정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전용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한국 기자가 따라붙었다. 호텔에도, 식사자리에도 기자들이 진을 쳤다. Weekly BIZ와의 인터뷰는 사전에 예정돼 있었지만, 호텔로 들어온 그는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한국 기자들이 어떻게 내 동선(動線)을 훤하게 알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처음 냉랭했던 분위기는 이야기가 시작되자 곧 풀렸다. ‘딸 바보(딸을 아주 좋아하는 아버지)’로 유명한 그에게 딸 이야기를 하자 미간에 잡혔던 주름이 펴졌다. 다이먼 회장은 설명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언젠가 교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전화기를 갈아 치운 회장님

―JP모간의 1분기 실적이 작년보다 크게 올랐습니다. 미국의 은행산업이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보십니까?

“미국의 은행산업이 (위기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봅니다. JP모간은 금융위기에서 완벽하게 회복했죠. 물론 다른 은행 가운데는 여전히 갈 길이 먼 곳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금융 시스템은 훨씬 나아졌습니다.”

다이먼 회장은 월가의 금융인들을 천재나 귀족으로 여기는 문화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고객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가를 최선으로 여긴다. 그래서 금융업에 끼어 있는 불필요한 비용을 참지 못한다. 다이먼이 2004년 JP모간의 사장이 됐을 때 그는 영국지사에 있는 파생상품 트레이더들에게 이렇게 따져 물었다.

“지금 여러분이 쓰고 있는 전화기를 얼마에 구입했는지 아십니까? 제가 이야기해 드리죠. 런던 사무실 전화기 한 대의 평균 구매 가격은 약 22달러입니다. 내가 확인해 봤는데, 이 전화기의 구입가격은 9달러여야 적당합니다.”

하지만 그가 짠돌이이기만 했다면 월가의 존경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JP모간 CEO가 된 직후인 2006년 1월 그는 시카고경영대 강연에서 “항상 최악의 상태를 가정하고,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대비를 하라”고 말했다. 당시는 JP모간의 주가와 이익 모두 오르고 있을 때였다. 그는 은행이 잘나갈 때 오히려 우량 자본과 대손충당금을 늘리고 동시에 위험·부실자산의 비율을 낮게 유지하는 ‘요새(要塞) 같은 대차대조표(fortress balance sheet)’를 주창했다.

다이먼이 금융위기라는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악재가 한꺼번에 겹친 최악 상황) 속에서도 파산에 직면한 베어스턴스를 인수하고, 아홉 달 만에 워싱턴뮤추얼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유비무환의 자세 덕분이었다. 그리고 변화의 바람이 불었을 때 남들처럼 보호벽을 쌓는 대신 풍차를 돌릴 수 있었다.

―JP모간은 ‘요새 같은 대차대조표’를 통해 금융위기를 잘 견뎠고, 이번 위기의 최후의 승자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변화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습니다. 몇 가지 예외는 있네요. 위기점검위원회가 금융위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차례 열려 한두 시간 회의를 했습니다만 (위기가 심각했던) 6개월간은 일주일에 7일, 하루에 세 차례 열렸습니다. 이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이 그전에는 12명이었는데 경제위기 때는 50명이 넘었습니다. 누구든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회의에 참석시켰으니까요. 그 점이 위기 동안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여러 은행의 합병을 주도했습니다. 문화가 다른 금융회사를 통합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합병은 아주 고된 작업입니다. 가장 첫 번째 비결은 합병을 하기 앞서서 지금 운영하고 있는 회사를 잘 운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핵심(core)’이 잘 돌아가야지요. 여기서 핵심이란 제도, 사람, 문화, 상품과 서비스입니다. 물론 베어스턴스의 경우는 JP모간과 비교했을 때 규모가 아주 작았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큰 거래는 아니었습니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그는 지난 몇년간 인수하고 싶은 기업을 적어서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래서 인수를 미리 준비하고 재빨리 조직을 합칠 수 있었다.

“워싱턴뮤추얼을 합병한 지 아홉달, 아니 열두달 만에 우리(JP모간) 시스템과 기존 워싱턴뮤추얼의 IT 시스템을 완전히 통합했습니다. 각 지점을 재단장하고 사람들을 교육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열두달 만에요. 이건 평균보다 훨씬 빠른 겁니다.”


금융은 건물을 짓는 일

다이먼 회장에게 금융의 핵심을 묻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리스크 관리.”

―왜 그렇습니까?

“리스크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결국 패배자가 됩니다. 저기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 보이시죠? 만약 건축가가 설계를 잘하지 못한다면 저런 건물을 제대로 지을 수 없을 겁니다. 제가 하는 일은 각각의 건물과 공장이 적절하게 설계되고 운영되는지, 그리고 새는 돈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상황이 나빠졌을 때를 대비할 수 있지요.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무조건 돈을 내주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다. 은행가들은 대출하러 온 사람을 돌려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무조건 높은 이윤을 보고 빌려주는 식이 아니라 그 돈이 적절하게 사용되는지를 체크하는 규율(discipline)이 아주 중요합니다.”

다이먼 회장은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고 있는 금융 규제 논의에서도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은행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파생상품 등 특정분야를 분사하자는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다(absurd)”고 말했고, 지난해 통과된 미국의 금융개혁법인 ‘도드-프랭크법’에 대해서는 “끔찍한 수치(terrible shame)”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를 예방하고 금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규제가 불가피하지 않습니까?

“규제 전부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보호청(도드-프랭프법에서 신설돤 소비자보호기구)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아주 일부가 멍청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파생상품부문을) 분사하라는 제안이 그런 예입니다. 규제 가운데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시스템을 더 단순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 규제는)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일부는 효과 면에서도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금융인의 연봉이 높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영국에서는 정부가 나서 은행장의 연봉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때론 은행가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회사가 망해가는 상황인데도요. 그런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회사별로 판단할 문제라고 봅니다. 단일한 기준을 모두에 적용하기란 어렵습니다.”

―본인은 미국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은행가입니다. 지금 연봉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 회사에는 저 말고도 연봉이 높은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저희 이사회는 한해 성과만을 가지고 보상을 정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인 성과를 평가하죠.”


'금융천재' 월가 슈퍼스타

인수할 기업 적어 주머니에… 늘 보며 준비해 시스템 통합 빨라


한국 은행의 해외 진출?

포부는 좋지만 솔직히 어려워
그러나 글로벌 한국 기업들이 보장된 고객… 기업 따라가라

―한국 은행들도 덩치를 키우고 해외에 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조언을 한다면?

“첫째, 그런 포부는 아주 좋습니다. 둘째,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일은 훨씬 복잡하지요. 셋째, 그럼에도 비교적 손쉬운 고객들이 있습니다. 해외에서 잘나가는 한국의 기업들이죠. 이미 이런 회사들은 전 세계에서 영업을 하고 있고, 그들이 어디에 있든 은행서비스는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 우선 은행이 한국 기업을 따라가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중국 경착륙 안 할 것

―미국의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들어 미국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전망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S&P가) 신용등급 전망치를 낮춘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미 미국 내 대다수의 사람은 미국이 빚을 줄이고 재정적자에 맞서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이 중요합니다. S&P나 다른 사람들은 이제서야 그걸 깨달은 것이죠.”

―S&P 역시 새롭게 문제를 제기했다기보다 미국 정치가 재정적자 문제를 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한 것 아닙니까?

“지금 통계를 보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지속 불가능합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고치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에요. 실은 아주 쉽게 고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정치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여러 사람을 한자리에 모아서 동의를 구해야 하죠. 제 생각에 정치인들은 결국 그렇게 할 겁니다. 윈스턴 처칠이 이런 말을 했죠. ‘미국인들은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한다. 모든 가능성을 다 소진하고 난 뒤에.’ 저는 미국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낙관합니다.”

―회장님의 딸들이 지금 회장님의 나이가 되는 30년 후에도 미국이 여전히 강력한 국가일까요?

“제게는 3명의 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도 미국이 여전히 강력하고 성공적인 국가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미국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제 완전히 회복됐다고 볼 수 있습니까?
“거의 그렇습니다. 미국의 기업, 중소자영업자, 소비자까지 모두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바라는 수준만큼까지 좋아졌다고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어요. 정작 문제는 심각한 글로벌 이슈들입니다. 유럽의 국가부채 위기부터 중동의 원유까지, 이런 것들이 진짜 문제이고, 회복세에 오른 세계 경제를 탈선(脫線)시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 세계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협은 뭡니까?

“유가가 배럴당 140~150달러까지 오른다면 세계 경제 회복세를 꺾을 수 있습니다. 중동 상황에서 몇 차례 더 격변이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아시아경제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시죠?

“네. 지난 경제위기 때에도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잘했어요. 중국은 지금이 경제위기였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였고, 한국은 여러 국가 가운데 가장 빨리 위기에서 회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아시아를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습니다. 중국이 다시 경착륙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요.

“저도 그런 우려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을 예로 들면, 중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런 조치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이 경착륙을 피할 것이라고 봅니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경제 운영에서 아주 뛰어난 성과를 보여줬고, (경착륙을 피할) 정책수단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경착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계속 살까요?

“일반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많은 외국 투자자들이 아시아, 한국, 중국에 관심 있고, 다른 아시아 국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아시아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딸 바보' 자상한 아빠

세 명의 딸, 내 나이 됐을 때도 미국이 여전히 강력할거라 확신
 


美 재정적자, 지속 불가능하지만 고치기 불가능한 문제는 아냐
오히려 무섭게 치솟는 油價가 세계경제 회복 발목 잡을 것


―경제위기가 끝나고 세 딸과 보내는 시간이 좀 늘었습니까?

“사실 이제 다 커서 제 품을 떠났죠. 한 명은 하버드경영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곧 결혼을 할 예정이고, 다른 딸은 클린턴 재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막내는 이제 곧 듀크대를 졸업할 예정입니다. 이번 출장이 끝나면 곧장 딸아이 졸업식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낼 계획입니다.”

―삶에서 철학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제 가족과 인류지요. 제 아이들과 세계가 좀 더 나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JP모간에서 일하며 이 회사를 역동적이고 건강한 회사로 만드는 것도 그런 목표를 위한 수단입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사업이 잘되면 회사는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세계 곳곳의 고객들과 공동체를 도울 수 있고, 그런 방식을 통해 인류애를 실천할 수 있다고요.”

다이먼 회장은 “리더는 늘 자기 묘비에 뭐라고 쓰여질지 생각해야 한다”며 자기 무덤에는 이런 글이 새겨졌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그립다. 그가 여기 있는 동안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됐다.”

다이먼 회장은 누구

씨티그룹 일궜지만 동업자의 배신… 그리고 극적 부활


“셰익스피어 희곡에 나오는 어떤 영웅보다도 극적 반전을 겪은 인물.”(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그리스 이민자 3세다. 다이먼의 할아버지는 1919년 그리스에서 뉴욕으로 이주, 접시닦이부터 주식중개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의 아버지도 주식중개인이었다. 다이먼은 터프스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하버드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받았다.

1982년 하버드를 졸업한 다이먼은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 리먼브러더스 등 월가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친구이자 당시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이사회 의장이었던 샌디 웨일(Sandy Weill)의 권유로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 취직한다. 이후 웨일과 다이먼 콤비는 1986년 커머셜크레딧이라는 작은 은행을 인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프라이메리카, 트래블러스, 살로먼브러더스 등을 잇달아 합병하며 당시 미국 최대의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을 탄생시킨다. 35세에 사장이 된 다이먼은 ‘웨일의 오른팔’로 불렸다.

하지만 1998년 11월 1일 일요일, 그는 15년간 모셔왔던 웨일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미국 언론은 당시 씨티에서 일하던 웨일의 딸 승진 문제, 다이먼이 이끌던 자회사의 손실 때문에 두 사람이 반목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심지어 “65세의 웨일이 막 월가의 스타로 떠오르는 다이먼을 시기했다”고 쓰기도 했다. 스타에서 야인이 된 그는 해고 다음날 서점으로 달려가 평소 좋아하던 역사책과 전기 30~40권을 사서 읽었고,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권유에 따라 복싱을 배우기도 했다. 세 딸과 유럽여행도 했다.

다이먼은 2000년 시카고에 본사를 둔 당시 미국 내 자산규모 5위 뱅크원의 CEO로 선임되며 화려하게 복귀한다. 2004년 JP모간과 뱅크원이 합병하면서 다이먼은 JP모간의 이인자가 됐고 2006년 CEO에 올랐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경영자로서는 드물게 골프를 안 친다. 대신 딸들과 테니스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