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잇는 음식....

과메기·대게·물회·고래고기…'일품 맛' 지천이로다

dunia 2009. 11. 26. 15:16

과메기·대게·물회·고래고기…'일품 맛' 지천이로다
경북 영덕·구룡포·포항 맛 탐방

경북 포항 일대가 시원했다. 파란 수평선 위를 미끄러지듯 국도를 달리기도 했다. 수평선 위로 갈매기가 떴다가 내리 꽂혔다. 보석 알갱이처럼 바다는 파랗게 차가웠다. 살아 넘실거리는 저 파도에 짧은 언어는 마저 이를 수가 없다. 짧은 외마디. 아 이를 어쩌나. 파도처럼 허기가 밀려왔다. 경북 영덕 구룡포 포항 시내 등지를 다니면서 맛을 탐색했다. '매일신문'의 취재 지원을 받았다.


바람 불고 추울 때 과메기 제 맛

◆ 구룡포


살아있는 것을 3∼4일 말려 쫀득하고 물컹한 2가지 다른 맛을 내는 과메기.
△과메기 '실내식당'=구룡포는 지금 한창 과메기를 말리고 있다. 과메기 철이다. 과메기를 내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다. 과메기를 잘 한다는 '실내식당'은 입구부터 허름하다. 그러나 '겉' 보기를 돌같이 할 것! 앉았는데 내오는 과메기가 처음 보는 과메기다. 과메기가 두껍다. 함춘선(52) 여주인은 "봐라, 두께가 다르지 않나"라고 했다. 먹어보니 껍질 쪽은 약간 물컹하고 안쪽은 꼬들꼬들 쫀득하니 말랐다. 희한하게 쫀득하고 물컹한 두 개의 다른 맛이 하나의 과메기 속에 있는 것이다. 함씨는 "냉동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을 말려야 이런 두께가 나온다"고 했다. 일주일 놔두어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1만5천원짜리 한 접시에 과메기 9~10쪽이 통째로 나오는데 그걸 가위로 서너 동강 잘라 먹도록 해놓았다. 미역 배추 잔파 고추 마늘을 넣고 먹어도, 그냥 과메기만 먹어도 맛이 고소하다.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데 과메기는 볕 드는 언덕에서 직접 말리는 것이다. 함씨는 "요즘 처럼 바람 불고 조금 추울 때 과메기가 가장 맛있다"고 했다. 그런데 과메기 살의 표면에 2개의 골이 나 있다. "우리집 과메기의 특징이며, 싱싱한 것을 말리면 이렇게 골이 난다"고 함씨는 말했다. 셋 사람이 먹을 수 있는 1만5천원짜리 한 접시를 시키면 꽁치추어탕과 꽁치조림 혹은 과메기조림을 낸다. "과메기조림 얼마나 맛있다고요." 구룡포 항에 접한 선모델 옆 골목 들어가 구룡포새마을금고 앞. 낮 12시~오후 10시 영업, 쉬는날 없음. 054-276-9856.

고래 한 마리의 맛을 한 접시에 올린 고래 수육.
△고래고기 '삼오식당'=모모식당 유림식당과 더불어 구룡포에서 유명한 고래전문점이다. 2대째 35년간 장사를 해왔다. 고래불고기 고래수육 고래육회 고래꼬리 고래국밥 고래전골 고래찌개로 메뉴가 아주 다양하다. 고래불고기는 제일 비싼 부위인 '우네'만 넣고 당면을 넣고 구워내는 것이며, 고래전골은 국물이 들어간 두루치기 식이며, 고래찌개는 얼큰한 국으로 끓여내는 것이다. 그중에서 고래국밥(1만원)이 특이했다. 30~40분 푹 끓여 고래고기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얼큰하고 뻘건 쇠고기국밥과 비슷하면서 고래고기의 맛이 비치니 맛이 조금 다르다. "고래고기가 많이 들어가야 고래국밥이 된다"고 방지용(31) 사장은 말했다. 고래국밥은 이전에 구룡포 사람들이 난전에서 고래고기를 사서 집에서 끓여 먹던 그 국밥이다.

고래수육(4만, 6만원)은 고래고기 맛의 총천연색이다. 10여 가지 부위가 고루 나오는데 말 그대로 고래 한 마리다. 흰색으로 쫄깃쫄깃 맛나는 꼬리살과 마블링이 돋보이며 부드러운 턱살을 비롯해 갈빗살 대창 혀 위 뱃살 턱껍질 숨구멍살 머릿살 힘줄, 헤아리기도 숨가쁘다. 이 집은 밍크고래 전문점이다. 방 사장은 "밍크 고래는 10cm 이상 크기의 먹이는 먹지 않는다. 소위 초식 동물이다. 그래서 고기가 순하게 맛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곳에서는 고기를 주로 소금에 찍어 먹는다. 다만 고래꼬리(3만, 5만원)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라고. 갈치구이(2만원), 갈치찌개(2만, 3만원)도 있다. 구룡포수협 냉동공장 골목 안 혹은 구룡포수협 상호금융 본점 옆 골목. 오전 10시~오후 10시 영업, 쉬는날 없음. 054-276-2991.


간간하고 짭짤한 대게 최고

◆ 영덕


영덕 '박달대게'.
△박달대게와 회 '동해안횟집'=턱 밑까지 차오르는 파란 동해를 곁눈에 두고 맛을 탐닉하는 곳으로 영덕에서 알아주는 집. 박창현(38) 사장은 대게 전문가다. 그는 부모를 이어 강구수협 지정중매인 일을 하고 있다. 어머니 안순자(65)씨는 강구항의 유일한 여성 중매인이었다. 이 집 이름 '동해안'은 어머니의 안씨 성을 따서 '동해의 안씨 집'이라는 뜻. 23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

큼직한 '박달대게'를 먹었다. 영덕에서는 5년 전부터 '박달대게'로 특화하고 있다. 집게다리에 초록 라벨을 붙여놓았는데 박달나무처럼 속살이 꽉 찬 대게다. "대게의 맛은 무엇이냐" 박 사장은 "양념을 가하지 않은 것 중 단연 최고의 맛"이라고 했다. 박달대게 다리 한쪽인데도 살이 양 볼때기에 가득 찼다. 간간하고 짭짤한 살이 세로로 편편이 부서지는 것을 혀가 지금 느끼고 있다. 이것이 한일경계수역 근처의 먼바다, 배로 12시간 거리에 있는 심해의 맛이다. "게는 그믐에 살이 차고 보름에 살이 없다, 혹은 그 반대의 말은 장사치들이 지어낸 말"이라고 박 사장은 일러줬다. 게의 살이 차고 안 차고는 어느 바다에서 잡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는 것. 게 살이 가득하게 넘어가는 대신 '너희가 게 맛을 알아'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솟아오른다. 자연, 바다의 간이 이렇게 절묘하다는 것이 게 맛의 비밀이다. 담백하고 고소하다. 날치 알을 살짝 뿌려 내는 게장비빔밥도 맛나다. 박달대게 2마리 10만원.

이 집의 모듬회(5만~8만원) 또한 일품이었다. 지금은 쥐치 참가자미 장치 방어 도다리를 길쭉하게 포를 떠서 냈다. 주방에서 '혼기리를 땡긴다'는 방식이다. 생선은 결대로 썰어야 한다는 게 박 사장의 신조란다. 길게 척척 걸쳐드는 회의 싱싱한 맛이 입안에서 넘쳐난다. 음식을 시키면 오징어통찜 과메기 회초밥 생선찜 계란말이 호박전 호박죽 오리를 비롯한 열대여섯 가지 반찬과 곁 음식이 나온다. 1인 2만~2만5천원 정도. 수족관에 '이시가리'도 있었다. 이 집은 팬션도 겸하고 있다. 경보화석박물관과 강구항 중간지점, 남호해수욕장 인근. 오전 9시 30분~오후 10시, 쉬는날 없음. www.dha3.co.kr 054-733-4800.


채소와 비벼대는 물회 '그만'

◆ 포항시내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배달시켜 먹었다는 포항물회.
△물회 '새포항물회식당'=포항까지 가서 물회를 먹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물회를 시켜 먹은 집이다. 소문이 나서 국회의사당에서도 주문이 들어와 배달을 했다. 지난해 포항신항만 개장 행사 때 3천명분의 물회도시락을 내기도 했다. 50년 전통의 집으로 포항에서 물회의 원조집이다. 도다리 물회인 돈지물회(1만5천원), 오징어 광어 우럭을 넣는 포항물회(1만1천원), 청어 전어 꽁치 오징어를 넣는 등푸른물회(8천원), 등푸른물회의 재료를 채소와 비벼내는 막회(7천원)가 상 위에 화려하게 펼쳐졌다.

김태순(52) 여주인은 "우리집은 전국 최초로 수족관의 살아있는 고기를 바로 잡아 낸 물회집"이라고 했다. 숟가락으로 쓱쓱 물회를 비벼내는 김씨의 손놀림이 시원하고 쾌활하다. "잘 비벼야 맛이 나요." 그런데 이 집에서는 부산의 물회집들고 달리 식초를 넣지 않는다. "활어여서 식초를 넣으면 회가 물러져요." 물회에는 오이 잔파 설탕 양파 김 다진마늘 등이 들어 있는데 역시 부산식 물회와 달리 무를 넣지 않았다.

화장실로 통하는 이 집 마당은 옛 마당이다. 적산가옥인데 마당과 가옥이 저녁의 빛 속에서 고풍스러웠다.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물회의 맛은 좌우하는 고추장을 이 마당에서 직접 담근다. 매실 엿기름 찹쌀가루 메주가루 고춧가루가 재료다. "고추장을 1년 숙성시켜야 물회의 맛이 깊어져요." 포항물회의 삼삼한 맛, 돈지물회의 담백한 맛이 잊히지 않는다. 등푸른물회는 맛을 아는 이들이 먹는 물회. 흰살생선물회보다 간이 세고 강하다. 그게 맛의 요체다. 물회는 밥맛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음식이다. 물회 한 숟가락의 맛은 밥맛과 더불어 농염해진다. 물회도시락도 싸주고, 회(4만, 5만원)도 있다. 북구 대신동 포항북부시장 입구. 오전 8시 30분~오후 10시 영업, 쉬는날 없음. 054-241-2087.

200m 깊은 바다에서 잡은 물곰으로 끓인 시원한 물곰탕.
△물곰탕 '물곰식당'=이 집은 북구청 앞의 유명한 맛집으로 통한다. 물곰이 뭐지? 바다 메기를 포항에서는 '물곰'이라고 부른다. '곰치' '물텀벙'이라고도 한다. 부산 음식에 견주면 메기탕이다. 그런데 다르다. 다대기가 들어가 얼큰하다. 얼큰한 맛에서 김치 맛이 난다. 김현각(42) 사장은 "다대기를 살짝 발효시킨다"고 했다. 시원하고 깊다. '물곰'은 200m 깊이의 먼바다에서 잡는 길이 1m 이상의 것이다. 새우 게만 먹고 산다. 그래서 깊고 시원한 것이다. 김 사장은 "물곰은 바다의 순두부"라고 했다. 잇몸이 약한 어르신, 산모들에게 아주 좋은 음식이라고. 다대기를 빼고 흰 국으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포항 사람들은 80% 이상이 다대기를 넣고 물곰탕을 먹는다. 무르게 부서지는 살점, 시원하다. 뼈 사이에 붙어 있는 살과 껍질이 흐물흐물하다. 이걸 먹어야 물곰을 제대로 먹는 것이다. 뼈 사이의 살점을 쪽쪽 소리를 내며 빨아먹어야 한다. 미나리 콩나물 무, 그리고 정성들인 육수가 어우러진 물곰탕은 '시원하다'는 말 이전의 맛으로 시원하다. 속을 뭔가 빠른 것이 터널을 펑 뚫듯이 지나간다. 10년 된 집인데 지금 사장은 2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물곰은 살아있는 것만을 쓴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배가 나가지 못해 문을 닫는 경우가 가끔 있다. 북구청 입구에서 직선 거리로 100m, 혹은 포항육거리 이종학여성병원 골목. 오전 9시~오후 9시 30분 영업, 1·3주 일요일 쉰다. 054-242-6111.

마블링이 돋보이는 쇠고기 갈빗살.
△쇠고기 돼지고기 '화춘옥'=포항시청 공무원들이 많이 가는 집이다. 쇠고기는 갈빗살만 내는데 마블링이 확연하다. 입에 넣으니 녹는다. 숯불에 석쇠로 쇠고기를 굽는데 불의 향을 머금은 고깃살이 향긋하다. '생고기 전문점'이라는 이름처럼 생고기를 내고 거기서 고기 맛이 난다. 쇠고기 갈빗살 1인분 120g 1만8천원. 돼지고기도 있다. 삼겹살(120g 7천원)과 돼지갈비(200g 7천원), 그리고 4명이 먹을 수 있는 돼지수육(5만원)이 있다. 맑은 된장찌개가 깔끔했다. 남구 대잠동 포항시청 앞. 오후 3~10시. 일요일 쉰다. 054-272-0523.

글·사진=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 시장들

포항 죽도시장의 곰치(오른쪽)와 양미리.










포항에 가면 죽도시장 구경을 빠뜨릴 수 없다. 포항 죽도시장은 먹을거리로 광활하다. 엄청 큰 시장이다. 죽도록 먹을 수 있다고, 죽도록 좋다고 죽도시장이란다. 제철을 맞은 양미리 미주구리 도루묵이 지천이다. 자갈치시장처럼 횟집들은 늘어섰고 유명한 고래고기집도 있다. 인심도 좋다. 김 한 장, 메주 쑤는 콩을 그냥 먹으라고 한다. 고래고기도 한 점 집어 먹었다.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활기차게 살아난다. 강구항의 어물전도 싱싱하다. 갑오징어 한치 오징어들이 물이 올랐고, 한쪽에는 뱃고둥도 있다. 동해가 부려놓은 것들로 동해의 물빛이 반짝거린다. 시장에서 난데없이 발레리의 구절이 스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